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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이야기/승환이와 사람들 그리고 책

'또봇' 찾아 삼만리 위대한 아빠 산타

by Callus 2013. 12. 25.

[다음의 이야기는 2013년 12월 25일 조선일보 A2면에 기고 된 이기호-소설가의 글을 그대로 옮겼습니다.]


제목 : '또봇' 찾아 삼만리 위대한 아빠 산타 


그해 성탄 전야,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한 아이의 기도를 들어주기 위해 대천사 한 명을 친히 지상으로 내려보내셨다. 


그 대천사의 이름은 가브리엘, 동정녀 마리아에게 처음 아기 그리스도의 수태 사실을 알린 바로 그 천사였다. 



가브리엘 대천사는 지상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서울 시내에 있는 한 대형마트부터 찾아갔다.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완구 코너에서 장난감을 구입해 월계동에 사는 한 아이에게 전달하는 것. 가브리엘 대천사는


대형마트에 들어서기 전, 잠깐 거울 앞에 서서 옷매무새부터 살펴보았다. 양복에 코트를 걸친 그는 누가 봐도 평범한 삼십대 


후반의 아이 아빠처럼 보였다. 그는 숨을 한 번 길게 내쉰 후, 천천히 완구 코너 쪽으로 걸어갔다. 시간은 이미 밤 아홉시를 넘


어서고 있었다.




[일러스트 = 이철원 기자]



가브리엘 대천사는 완구 코너를 몇 번 돌아보다가 마침 그곳을 지나치던 한 직원을 불러 세웠다.


"저기, 제가 지금 또봇 쿼트란이란 장남감을 찾고 있는데요?"


그는 얼굴 가득 온화한 미소를 지우며 물었다. 그의 말을 들은 노란색 유니폼을 입은 직원은 잠깐 위아래로 가브리엘 대천사를 


훑어보았다. 


그리곤 짧게 '풋' 하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손님, 지금 그걸 찾으시면 어떻게 해요? 그건 이미 일주일 전에 다 동이 났는데 ......"


"그럼, 여기 선 못 구한단 말씀이군요."


그때까지만 해도 가브리엘 대천사는 당황하지 않은 채, 계속 또박또박, 천천히 말했다. 그의 음성은 마치 노래방 에코 효과처


럼 넓고 길게 퍼져 나갔다.


"여기 뿐 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를 다 뒤져도 못 구할 거예요.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 할아버지가 오셔도 그건 못 구한단 


얘기예요."


그 말은 듣고 가브리엘 대천사의 양쪽 볼은 더 벌겋게 변해버렸다. 아아, 그래서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에 내려보내셨구나,


이게 생각처럼 간단한 임무가 아니었구나.


"그래도 어떻게 ..... 방법이 없을까요?"


가브리엘 대천사는 두 눈을 감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직원에게 물었다.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한데..... 그러게, 손님..... 평소 술 조금만 드시고 미리미리 준비하셨어야죠."


직원은 가브리엘 대천사의 양쪽 볼을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찼다.



그로부터 한 시간 후, 가브리엘 대천사는 마트 직원이 가르쳐 준 그대로 지하철 역 한쪽 출입구에 흰색 마스크를 쓴 채 


서 있었다. 직원은 그에게 말했다.


"간혹 인터넷 찾아보면 이런 날 대비해서 사재기하는 인간들이 있거든요. 값이 따블이긴 하지만 어쩌겠어요? 내가 같은 아버지


입장이어서 특별히 도와드리는 거예요."


직원이 대신 접촉해준 장난감 판매상은 흰색 스쿠터를 타고 나타났다. 


"아이디가 가브리엘 맞으시죠?"


가브리엘 대천사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거렸다.


"이게 원래 따따블 받아야 하는건데, 날도 날이라서 제가 특별히 십오만 원에 퉁 쳐드리는 거예요."


가브리엘 대천사는 조금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장난감 상자를 받아 들었다. 그러곤 판매상에게 신용카드를 내밀었다.


"아, 나 참, 아저씨가 지금 장난하나? 현금을 주셔야죠!"


판매상은 껌을 질겅질겅 씹으면서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제가 지금 가진 게 이것밖에 없는데요. 이거면 되지 않나요?"


가브리엘 대천사는 주눅 든 목소리로 말했다. 


"이 아저씨 술 많이 드셨네, 아, 누가 이런 거래를 카드로 해요!"


"아니, 나는 원래 이것밖에 안 갖고 내려와서......"


가브리엘 대천사의 얼굴은 이제 이마까지 벌겋게 변해 버렸다.


그로부터 다시 한시간 후, 가브리엘 대천사는 한 손에 '또봇 퀘트란'을 든 채 택시를 잡으려 도로 이곳저곳을 뛰어다니고 있었


다.


조금 전, 장난감 판매상은 가브리엘 대천사를 데리고 한 소주방으로 들어갔다. 


"아저씨, 정말 운 좋은 줄 아세요. 제가 특별히 아는 형님 통해서 깡 해드리는 거예요. 수수료까지 해서 이십만 원, 어때요, 


괜찮죠?"


가브리엘 대천사는 카드 전표를 손에 쥔 채 계속 마주 오는 빈 택시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택시들은 그의 앞에서 서행할 뿐, 


그러나 태워주진 않았다. 시간은 이미 자정을 향해 흘러가고 있었다. 가브리엘 대천사는 이건 마치 예수 그리스도의 잉태 


사실을 알리러 가는 길보다 더 험난하구나, 이 땅의 아버지들은 모두 이렇게 살아가고 있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그는 자신의 곁에 선 다른 아버지들을 따라 도로 위 택시를 향해 소리치기 시작했다.


"월계동 따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