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이 돌아가신 후로 어머님의 말동무가 되어드리곤 하는데...
어느 날 어머님께서 깊은 추억에 잠기시더니 예전 이야기를 해주셨다...
어머니는 함경도 북청이 고향이시다.
함경도 북청에서 태어나셨고 몇몇 친척과 함께 북청에서 같이 사셨다고 하셨다.
그러다 어머님이 6살 때 6.25 전쟁이 발발하였고 북한군과 함께 지금의 마포까지 피난을 내려오셨다 하셨다.
[독일 언론이 소장하고 있는 6.25 전쟁 사진]
그때 '그냥 북청에 계시지 왜 내려오셨어요?' 여쭈어 보니 '내가 뭘 알았겠어 그냥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손 잡고 북한군과
같이 내려왔지'
[6.25 전쟁 당시 한 이이가 죽은 엄마를 보고 하염없이 울고 있는 사진]
[6.25 전쟁 당시 폭격으로 파괴된 앙상한 철교위를 기어가는 6.25 피난민들]
그래서 마포에서 자리를 잡으시고 한강으로 외할머니와 빨래를 자주 다니시고 그때 외할머니와 빨래를 하면서 노셨던 기억이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아계신다 하셨다..
아마도 북한군이 기습 남침 후 인천상륙 작전 직전 서울을 비롯한 우리나라 전역을 북한군이 점령하고 있을 때 였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때 당시 매일 낮 12시에 비행기로 공습이 있었는데... 어느날은 공습이 없어서 외할머니와 손잡고 지금의 용산에
나갔셨다가 갑자기 1시에 폭격이 시작되고 그 폭격으로 외할머니가 피할새도 없이
용산에서 돌아가시고 외할머니의 시신을 추스리지도 못하고 얼른 그 자리를 피하셔야했다 하셨다.
[6.25 전쟁 당시 대대적인 융단폭격에 나선 B-29 비행단대]
나중에 전쟁이 끝난 후 용산에 철도가 지나가게 되었는데 어머님은 지금도 그 때의 기억으로 서울역에서 용산역으
향하는 버스를 타시면 멍하니 창문을 바라보시며 눈시울이 붉어지시고 용산을 지나가면 외할머니가 철도 밑에서
아파하실까봐 그 아픈 기억을 말씀을 하시며 눈물을 보이셨다.
[LIFE지가 공개한 6.25 전쟁 당시의 서울 모습들]
그러다 북한군이 점점 밀려 북으로 후퇴를 하기 시작하였으며 외할아버지를 강제 징용하려는 것을 어머니를 품안에 품고
'나를 끌고 가려면 이 아이도 함께 가야한다' 하면서 소리를 지르시며 징용되셨다가 어머니를 딱하게 여긴 북한군인이
아버지를 풀어주셨다 하셨다.
다시 1.4 후퇴가 시작되었고 외할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몇몇 지인 분들과 지금의 평택으로 피난을 가시는데 날씨가 너무 추
웠고 외할버지의 목에 매달려 가신 어머니의 발이 동상에 걸렸으며 지금도 그 때 이후 어머님은 아직도 한겨울에 버스를 타시
면 발에 통증을 느끼고 양말을 벗으신다.
[LIFE지가 공개한 1.4 후퇴 당시의 모습들]
어머님이 들려주신 6.25 전쟁, 1.4 후퇴의 이야기를 듣고 한동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어릴 적 학교에서 배웠던 내용이 아닌 어머님의 생생한 당시의 이야기를 듣고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목이
메이기도 하였다.
우리는 이 날을 잊어서는 안되고 마음에 새기며 다시는 이런 불행을 겪어서는 안되도록 해야겠네요....
아무 생각없이 지나치던 용산 철길을 외할머니를 생각하며 다시 되돌아보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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